지역 자원 & 키워드 유형
복원된 전설
백발이 성성한 노인이 오른손에 하얀 지팡이를 짚고 한 청년의 부축을 받아 산을 오르고 있었다.
뽀드득 거리며 눈 밟는 소리와 나뭇잎이 바스락 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숨이 차오른 노인의 입에서 하얀 김이 새어나왔다.
“할아버지, 이제 그만 돌아가시죠. 보이시지도 않는데 더는 무리십니다.”
노인의 손자가 볼멘 소리로 툴툴거렸다.
“조금만, 조금만 더 가자꾸나.”
손자 김민호는 간절해 보이는 노인의 모습을 외면할 수가 없어 하는 수 없이 노인의 뜻에 따라주었다.
성인의 걸음으로 금방 올라올 수 있는 거리를 한참만에 올라왔다. 어느덧 해가 저물어가고 있었다.
“할아버지. 드디어 도착했습니다. 여기인 것 같아요.”
‘내곡분교’라 적힌 팻말을 따라 들어선 이 곳의 분위기는 상당히 을씨년스러웠다.
공포체험 유튜브에서 봤을 법한 어두운 곳이였다. 골조만 남아있는 앙상한 콘크리트 벽. 그 위로 뻑뻑히 피어난 이끼들. 누가보아도 수십년이나 발길이 끊겼을 만한 공간이었다.
“할아버지, 이 곳은 학교가 아닌데요? 이제 해가 저물면 다시 내려가기 힘들어집니다. 서둘러서 돌아가요.”
민호는 운남의 손을 잡으며 재촉했다.
“민호야. 오늘은 여기서 자고 가자꾸나. 침낭을 펴거라.”
“예? 이 한 겨울에 여기서요? 안됩니다. 몸도 성치 않으신데… 큰일나세요!”
민호가 펄쩍 뛰며 소리쳤지만 운남은 미동도 없었다. 노인의 마지막이 될지도 모르는 소원인데
민호는 할아버지의 말대로 건물 안쪽으로 들어가 바람이 그나마 덜 부는 곳을 찾았다.
잠시, 혼자 남겨진 운남은 조심스레 콘크리트 벽쪽으로 다가갔다. 손에 들린 지팡이가 차가운 벽앞에 막혔다.
운남은 벽을 만져보며 회상에 잠겼다.
운남의 나이가 26살이던 때, 운남은 이곳에 선생으로 발령받았다.
처음에는 미군이 목재로 학교를 지었다 들었는데, 학교는 제법 건물다운 형태를 띄고있었다.
활성화 되었던 때 보단 학생들의 수가 빠져 있었지만, 그래도 간간히 아이들이 오순도순 자리해있었다.
따사로운 햇빛 아래, 옹깅종기 모여 하하호호 왁자지껄 떠드는 소리들이 들렸다.
운남은 첫 부임으로 긴장했지만, 허리만큼도 안 오는 아이들을 보며 교사가 되길 잘 했다고 자부했다.
그러던 어느 날 밤이었다.
“선생님! 선생님, 도와주세요! 우리엄마가 아파요!”
제자 하나가 급히 뛰어왔다. 자다 깬 런닝 차림에 자켓을 걸쳐입고 슬리퍼 차림으로 아이를 따라 아이의 집으로 갔다.
아이의 집에는 온 몸에 멍이 든채, 아이의 엄마가 쓰려져 있었다.
“칠석이 어머니! 괜찮으세요?”
다급하게 아이의 엄마를 부축하고 병원으로 데리고 갔다.
문이 닫힌 병원들 틈에서 겨우 응급처치를 끝낸 후 돌아온 운남은 근처 이웃들에게 자초지종을 들었다.
이 곳은 주인이 없는 산으로. 터전을 잃은 사람들이 모여 살던 화전민의 터였다.
최근에 토지 조사령이 반포되면서 화전민들을 내쫓고 있다고 했다. 오늘은 칠석이네가 버티가 봉변을 당한 것이다.
그 날 이후로도 계속적으로 마을 주민들의 울음 소리가 들렸다.
터전을 잃을 수 없는 주민들과 그들을 내쫓은 세력들과의 다툼이 지속되었다.
교실을 빽빽히 채웠던 아이들이 그 탓에 하나둘씩 마을을 떠나갔다.
어느덧 교실에 아이들의 수가 반 밖에 남지 않았다.
학교 운영도 점차 어려워지고 있었다. 살던 터전이 철거가 되고 허물어지며 아이들을 두고 떠나는 집들도 생겼다.
운남은 제자들을 지키고 싶었다. 마을 이장을 찾아가고, 군수를 찾아가 하소연을 해도 아무도 들어주지 않았다.
운남이 어느 날 칠석이네를 찾아갔을 때 집 내부에서 물건이 부서지는 소리가 들렸다.
“주인 없는 땅에 살면서 세금도 안내고, 임대금도 안내고… 돈을 내던가! 나가던가!”
무뢰배들이 칠석이와 그의 엄마를 구타하고 있었다.
“이보소! 뭣들 하는 거요!” 운남이 온 몸으로 그들을 막았다. 그들이 휘두르는 몽둥이에 머리와 눈을 맞았고
운남은 그 자리에서 피를 흘리며 쓰러졌다.
그 날 이후 운남은 시력을 잃은 장님이 되었다.
앞을 보지 못하게 된 상황에서도 운남은 학교를 지키고자, 제자들을 지키고자 애를 썼지만 학교는 결국 폐교하게 되었다.
길을 잃은 화전민들은 도시로 떠나와 도시 빈민이 되었고. 운남도 같이 도시로 떠내려왔다.
다시 콘크리트 벽을 만지던 운남이 밤하늘을 올려다 보았다.
다시는 별을 볼 수 없게 되었지만 우리의 아이들이 학교를 다닐 수 있도록 지키지 못한게 가장 큰 한이 되었다.
회피하며 살아온 기억의 저편에, 운남이 콘크리트 벽을 만지며 눈물을 흘렸다.
“미안하다… 내가 지켜주지 못해서…”
복원 연구 후기
짧은 시간이었지만 과거에는 희망의 공간이었던 이곳이 폐교가 된 것이 쓸쓸했다. 요즘도 폐교하는 학교들이 많아지고 있는데, 다음세대들에 대한 대책이 마련되었으면 좋겠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