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경계 밖의 사람들
제 주변의 경계밖의 사람들을 떠올려 보면 가장 먼저 호주에 사는 친구가 떠오릅니다. 제 친구는 셰프로서 주 3일은 주방에서 일을 하고, 나머지 시간은 자신의 주얼리 브랜드를 운영하며 주얼리를 만듭니다. '요리사'와 '주얼리 브랜드 디렉터' 어느 하나의 이름에 갇히지 않고 자신이 잘하고 좋아하는 일을 더해 스스로의 삶을 만들어가는 친구의 모습은 반드시 하나의 이름으로만 살아야 한다고 믿었던 저의 고정관념을 깨뜨렸습니다.
호주 친구의 주얼리 세공 작업실
저는 또한 단기간 남해 '소도읖'에서 베딩 스태프로 일하며, 소도읖 매니저님의 일상을 통해 노동의 다양한 형태를 경험했습니다. 오전에는 구슬땀을 흘리며 정직하게 몸을 쓰는 베딩 업무에 집중하고, 오후에는 행정 처리와 숙박 손님 응대를 병행하는 일과였습니다. 오랜 시간 직장 생활만 하면서 좁은 세계만 접한 저에게는 한 사람의 하루 안에 육체적 노동과 정신적 노동, 그리고 서비스가 공존할 수 있다는 사실이 신선하게 다가왔습니다.
저는 이 두 사람의 삶을 가까이서 봤으면서도 내가 원하는 환경은 내 스스로 선택해서 살 수 있을까?하는 의구심과 불안함을 느꼈습니다. 그런 고민을 하던 당시 10여년만에 만난 지인이 해준 이야기가 저의 전환점이 되었습니다. 산티아고 순례길을 걷고 온 그녀는 복잡한 마음을 단숨에 정리해 줄 이야기를 건넸습니다.
순례길에선 먹고, 자고, 싸고, 걷는 일밖에는 생각할 수 없게 돼.
물 한 모금 마시는 것도 너무 행복해져. 사소한 것에도 행복해지는 거야.
인간의 본질적인 행위만 남는 순례길을 경험한 이후로 그녀는 복잡한 생각들을 덜어내고 단순한 삶을 살아가고 있다고 했습니다. 대단한 걸 이루며 살지 않아도 괜찮다는 그 말은 저에게 큰 울림을 주었습니다. 그동안의 저는 표준화된 삶에서 벗어나면 낙오될 것이라는 공포에 갇혀 스스로를 끊임없이 채찍질해 왔다는 사실도 깨닫게 되었습니다. 남들이 하는 걸 다 해내지 않아도, 내가 가고자 하는 방향으로 단순하게 살아도 삶은 충분히 이어진다는 걸 깨달았기 때문입니다.
저는 이를 계기로 남들에게 뒤처지지 않기 위해 붙잡고 있던 수많은 선택들을 기꺼이 내려놓기로 했습니다. 그렇게 무한 인풋을 멈추고 최신 정보가 흘러넘치는 오픈채팅방, 스레드를 떠나 과잉된 정보와 선택지들을 줄여나가며 단순한 삶을 만드는데 집중했습니다.
2. 그럼 나는 어떤 하루를 살고 싶은가?
4시간은 컴퓨터 앞, 4시간은 햇빛 아래
제가 살고 싶은 삶은 하루 종일 모니터만 바라보는 삶은 아니었습니다. 하루 중 최소 4시간은 햇빛을 보며 휴식을 하거나 현장에서 사람들을 만나며 보내는 하루를 꿈꾸고 있습니다. 반드시 하루를 4시간씩 정확하게 나누는 것은 아니지만 모니터 앞과 밖의 조화로운 '반반의 삶'을 제가 추구하는 지속 가능한 삶의 형태로 정의했습니다.
3. 내가 나고 자란 지역에서 발견한 가능성
모니터 밖의 환경을 만들기 위해 가장 먼저 했던 시도는 제가 나고 자란 지역의 '지역 문화 기획자 스쿨'에서 시작되었습니다. 현장에서 사람들을 만나고, 지역 자원과 사람을 연결하며 로컬 문화 기획자로서 첫 발걸음을 떼게 해준 2가지 프로젝트를 소개합니다.
➀ 소문제작소 : 전설 복원 연구소
소문제작소는 가평과 의정부의 지역 자원을 활용해 참여자들이 직접 '전설의 시작점'이 되어보는 창작 워크숍입니다. 가평에 있는 연인산의 설화가 생각보다 최근에 만들어졌다는 사실에서 힌트를 얻으면서 시작한 프로젝트입니다. ‘전설은 아주 오래전부터 시작된 것이 아니라, 우리가 지금부터 만들어갈 수 있는 이야기’라는 관점의 전환을 보여주고 싶었습니다.
참여자 모집부터 홍보, 프로그램 구성, 장소 예약, 현장 진행, 그리고 지원금 행정 처리까지 모든 과정을 수행하며 쉬운 순간은 없었습니다. 하지만 0에서 1을 만드는 이 과정을 통해 문화 프로그램 기획의 실무 감각을 익힐 수 있었고, 무엇보다 참여자분들이 저희 팀이 제시한 과정에 맞추어 재밌고 새로운 전설을 써 내려가는 과정과 결과물을 보며 큰 보람을 느꼈습니다.
➁ 생전 장례식 : 죽음을 통해 '새로운 출발'을 돕다.
생전장례식은 죽음을 매개로 삶을 되돌아보고, 과거의 나를 정리하며 '새로운 출발'을 돕는 문화예술 프로그램입니다. 사실 '죽음'이라는 단어는 우리 사회에서 꺼내기 쉽지 않고, 때로는 무섭게 느껴지는 조심스러운 키워드이기에 기획 단계부터 우려가 컸던 것도 사실입니다. 참여자들이 거부감을 느끼지는 않을지, 너무 무겁게만 다가가지 않을지 매 순간 고민하며 준비했습니다.
프로그램을 진행하면서 저와 가까운 가족부터 지역 참여자분들까지 살아온 삶의 여정들을 '죽음'이라는 본질적인 질문으로 나누며 오히려 깊은 치유를 경험했습니다. 진심을 다한 고민 덕분인지 우려와 달리 프로그램은 무사히 마무리되었고, 이 경험은 저를 장례지도사 국가공인자격 교육과정 수료라는 예상치 못한 도전으로까지 이끌었습니다.
결국 중요한 것은 직업이라는 이름에 나를 묶거나 사회가 이상적이라고 제시하는 것에 나를 맞추는 것이 아니라, 하고 싶은 일들로 내 하루의 주도권을 직접 구성할 수 있느냐에 있었습니다. 이렇게 다양한 삶의 방식들을 목격하고 내가 나고 자란 곳에서 재밌는 일을 해보며 스스로의 가능성을 실험해 본 시간들은 고유한 나를 완성하는 '네 번째 힌트'가 되었습니다.
경계 허물기 연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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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 5일 8시간 일해야한다는 고정 관념을 지우고 본다면, 여러분이 꿈꾸는 '이상적인 업무 장소와 시간'은 어떤 모습인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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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공이나 경력과는 무관하지만, 마음 한구석에서 계속 궁금증이 생기는 '의외의 분야'는 무엇인가요?
(ex: 요리, 연기, 목공, 수어, 조향, 장례지도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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